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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LINQ Vol. IV

무성의한 대담 : 무성애를 말하다

by POSTECH LINQ 2023. 4. 9.

스님, 세카, 마그케인

시작에 앞서

우리는 종종 모두가 자신이 선호하는 성별에 당연하게 끌린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애자가 존재하고, 이에 대응되는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범성애자가 존재한다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누구에게도 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아주 낮은 강도로 끌림을 느끼는 사람도,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끌림을 느끼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들을 에이로맨틱·에이섹슈얼 엄브렐라에 속한다고 지칭합니다. 여기, LINQ 회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두 명의 에이로맨틱·에이섹슈얼 엄브렐라 당사자와 한 명의 비당사자가 무성애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성적 끌림이 무엇인지, 로맨틱 끌림이 무엇인지, 에이로맨틱·에이섹슈얼 엄브렐라에는 어떤 카테고리가 있는지 함께 알아볼까요?

우리는?

스님 안녕하세요! 우리는 무성애를 주제로 대담을 해보려고 모인 사람들입니다. 저는 대표 스님이고요.

세카 저는 부대표 세카고요,

마그 저는 운영위원 마그케인입니다.

스님 일단은 한 명씩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 대강 설명을 해보도록 하죠. 일단 저는 남성이고, 호모로맨틱[각주:1] 오토코리섹슈얼입니다.

마그 오토코리섹슈얼 같은 말들이 무얼 뜻하는지 얘기하면 좋으니까 제가 궁금한 것들을 적어놓을게요.

스님 맞아요. 지금, 마그케인님 의견이 제일 중요하니까ㅋㅋ.

마그 제3자니까.

스님 그럼 이제 부대표님이 한 번...

세카 저는 아직 퀘스쳐닝 중인데요, 가장 가까운 걸 꼽으라면, 시스젠더[각주:2] 여성이고, 옴니-호모플렉시블[각주:3]이고, 데미로맨틱 에이스플럭스입니다.

마그 저는 시스젠더 남성이고요, 제가 남성에 끌림을 느끼는건 확실한데, 여성에게 끌리는지는 아직 퀘스쳐닝 중입니다.

세카 유성애자이면서 유로맨틱인건 확실한가요?

마그 네. 저는 거의 항상 동시에 (느껴요).

 

성적 끌림이란?

스님 무성애를 보통 정의할 때,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 아주 러프하게 이렇게 정의하잖아요? 그런데 사람마다 성적 끌림에 대해 다르게 이해할 거란 말이에요. 그 얘기를 해보면 어떨까요?

세카 제가 느끼는 성적 끌림은, 정말 이건 일부분이지만, 성적 행위에 대한 선호가 아닌, 대상이 누구이면 좋겠는지... 그러니까 ‘내가 이 사람과 성적 행위를 하고 싶은지, 이 사람에게 끌리는지’가 판단 기준이라고 생각해요.

스님 그렇죠. 주체가 있고 대상이 있어야 끌림이라고 부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가끔 벡터로 표현된다고도 이야기하는데, 결국 ‘내가 저 사람과 어떤 성적인 행위를 통해 충족을 느끼고 싶다’가 성적 끌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무성애 가시화 행동 무:대’에서 하는 ‘무방한 이야기’라는 팟캐스트가 있는데, 진행자분께서 자신은 오랫동안 퀘스쳐너리[각주:4]로 살다가, 세상에 유성애자라는 게 있다는 걸 발견하고, 무성애자로 정체화를 했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내가 태어나서부터 다른 사람도 다 비슷하게 느낄 거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세카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고등학교 때 제가 커밍아웃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제가 매번 섹슈얼리티에 관한 얘기를 그 친구에게만 했었어요. 저는 항상 제가 에이엄브렐라인지 긴가민가했는데, 대화할 때 둘이 비슷했다 보니 “아,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살았어요. 고등학교 벗어나서 보니까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됐죠.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친구도 에이엄브렐라더라구요.

마그 성적 끌림이라는 것은 그 사람과 성적인 행위를 하고 싶은지 아닌지로 가려진다는 거에 동의해요. 하지만 저는 스님님이나 세카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내가 성적 끌림을 느끼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수도 있겠다”라는 고민을 한 적은 거의 없었던 거 같아요.

스님 제가 벡터라고 이야기한 이유가, 이 비유가 저에게 되게 도움이 됐어서 그렇거든요. 그러니까 주체도 있고 객체도 있고 방향도 있어야… 아 셋 중에 두 개가 있으면 하나가 결정되는 건가… 아 농담이에요ㅋㅋ. 아무튼, 벡터로 정의하고 나니, 제가 이때까지 성적 끌림을 느껴보지 못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어떤 사람을 보고 성적 흥분을 느끼는 것’이 성적 끌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성적 흥분을 느끼더라도, 그것을 끌림이라고 말하려면 ‘내가 주체가 돼서, 그 사람을 대상화해서, 성적 행위를 하고 싶다’는 조건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지금은 생각해요. 제가 고등학교 때 정말 많이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몇 년 지난 다음 생각해보니 그 당시에 그 친구를 대상으로 어떤 성적인 상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아, 이게(성적끌림) 좋아한다는 거랑 전혀 다른 개념이구나 하고 생각을 하게 됐어요. 대학교 와서 좋아하게 된 애를 대상으로는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약간 이런 느낌이었어요. 다른 성소수자들이 섹스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하는 걸 보니 ‘나도 저런 걸 느껴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너무 예의 바른 사람이라서 좋아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성적인 상상을 안 했던 거 아닐까?’하는... 그래서 그런 상상을 일부러 하려고도 했었어요.

마그 대학에 들어와서 다른 여러 성소수자들을 만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런 게 아니었잖아요. 혹시 알기 전에 그게 스트레스는 아니었어요?

스님 물론 답답한 게 있었는데 어디서 오는 답답함인지 몰랐어요. 말하자면 그 당시에는 나를 표현할 단어가 부족했던 거죠.

세카 저는 퀴어 사이에서 느껴지는 기시감이 정체화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중학교 땐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했는데, 레즈비언이라고 하기에는 그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는 느낌이었어요. 근데 저는 제가 사회성이 떨어져서 이런 느낌이 드는 줄 알았거든요ㅋㅋ. 그런데 거긴 유성애, 유로맨틱의 사회잖아요. 거기서 괴리감을 좀 느꼈던 것 같아요. 정체화하면서 ‘아, 내가 이런 거 때문에 그때 기시감을 느꼈구나’라고 많이 생각했어요.

스님 마그케인님은 처음으로 다른 성소수자를 만난 게 언제라고 했죠?

마그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스님 그러면 그때 이후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동질감 같은 걸 느꼈어요?

마그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았어요. 만약 이질감이 느껴졌다면 내가 유로맨틱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고, 정체화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을 텐데 딱히 그러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유성애자인지 아닌지 고민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오토코리섹슈얼이란?

마그 아까 스님님이 오토코리섹슈얼이라고 하셨는데 이게 어떤 건지?

스님 무성애는 아까도 말했지만 주체와 객체에 대한 거고, 사실은 성욕의 유무나 섹스의 선호랑 전혀 상관이 없거든요? 그래서 오토코리는 성적인 판타지와 성적 흥분의 대상은 존재하지만, 그 대상으로부터 성적 만족감을 느끼는 과정에 주체가 필요하지 않은 거에요. 본인과 그 대상을 연결지어서 성적인 만족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마그 그러면 그게 본인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는 건지… 아니면 본인이 아니어야 하는 건지…

스님 아… 그것도 정체화하는 분들에 따라 다른데, 저는 오토코리이면서 유성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런 오토코리적인 끌림을 느끼면서, 또 자기가 주체가 되는 끌림을 동시에 느낄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저는 에이섹슈얼 오토코리섹슈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그 그랬다면 더더욱 번뇌의 시간이 길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성적 판타지의 객체가 계속 있는 거잖아요? 그니까 어떤 대상으로부터 성적 판타지를 느꼈을 때 그게 성적 끌림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게 되게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 않았어요?

스님 그렇...죠. 근데 단어를 보는 순간 ‘아, 이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게 언어가 가지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설명할 단어가 없었을 때는 인지하지도 못하다가, 그걸 설명할 단어가 생기면 그때부터는 크게 헷갈릴 일이 없는 거죠.

 

데미로맨틱이란?

마그 세카님이 데미로맨틱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데미로맨틱이 어떤 의미인지…?

세카 강한 친밀감이 있어야 로맨틱한 끌림을 느낄 수 있는 지향성이에요. 전 유로맨틱인 사람들이 데이팅 어플이나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어떻게 바로 그 사람에게 로맨틱한 끌림을 느낄 수 있는지 궁금하거든요.

마그 첫눈에 보고 반했다는 얘기들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첫눈에 보고 반했다는 건 어떻게 보면 데미로맨틱적이지 않은 모습 아닐까요?

세카 그러니까 그런 전제 자체가 아예 저한테는 해당하지 않는 거 같거든요.

마그 제가 사귀었던 사람 중에는 연락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도 그 사람에 대해 호감을 느낀 적이 있었고 또 다른 사람들한테는 첫눈에 보고 반했다, 이런 이야기들 많잖아요. 그리고 제가 그 다른 사람들이랑 이야기할 때도 그 사람이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가 거의 몇 초 안에 첫인상으로 판가름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 경우도 많았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데미로맨틱 적이지 않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세카 저는 여자에게 “평범한 남자하고 아이린이 있을 때, 아이린이랑 사귈래, 평범한 남자랑 사귈래?”라고 물어봤을 때 답이 아이린이면 그 사람은 무조건 헤테로가 아니다는 식의 논제를 봤었어요. 그런데 저는 아이린 팬이고 돈도 많이 쓰지만 안 사귈 거거든요? 그런 전제 자체가 데미섹슈얼과는 많이 다른 거 같아요.

마그 음~. 어떻게 보면 그것도 판단 기준이 될 거 같아요.

세카 물론 데미여도 아이린이랑 사귈 수 있겠죠. 가까이 두고 싶으니까…

 

로맨틱 끌림이란?

스님 그래서 저는 오히려 로맨틱 끌림이라는 게 도대체 뭘 얘기하는지 헷갈리거든요. 제가 호모로맨틱이라고 한 이유는 일단 저는 성적 끌림은 안 느끼는 거 같은데 고등학교, 대학교 때 분명히 아주 눈물 나게 사랑(?)했다고 생각한 대상이 있었어서, 그냥 로맨틱이겠지 생각했었거든요. 사실은 그 끌림이 무엇인지 아직 이해를 못 했어요.

마그 그러니까 스님님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좋아했다고 느낀 사람들에 대해서 이 사람이 내가 정말 로맨틱하게 끌렸던 사람인지에 대해서 아직 모호하다는 말씀?

스님 네. 제가 아는 ‘로맨틱’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가 다른 사람들의 이해와 같은지 다른지, 그게 헷갈리네요. 그래서 묘사를 한 번 해볼 수 있을까요? 로맨틱 끌림에 대해서?

마그 제가 느꼈던 로맨틱한 끌림은 그 사람을 생각했을 때 갑자기 좋은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기분이 좋고, 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고, 같이 밥을 먹고 취미활동을 공유하고 그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그 사람과 여행도 다녀오고 싶은 거요.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물론 이게 로맨틱한 끌림의 필요조건은 아닌 거 같아요.

스님 첫눈에 반했다는 말을 할 때는, 처음 본 순간 방금 나열한 것들이 전부 연상이 되는 건가요?

마그 네. 아니면 앞에 말했던 것들과 비슷하거나. 물론 정말 좋은 사람이고, 그 사람을 봤을 때 설렌다는 감정을 느끼고, 다른 로맨틱한 감정도 느끼지만, 여행은 안 가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ㅋㅋ? 그건 뭐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른 거니까. 일단 일반적으로는 ‘그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고 삶을 함께 많이 나누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게 로맨틱한 끌림이 아닐까라고 생각해요.

스님 세카님은 어떠세요?

세카 저는 ‘연애 계약을 하고 싶다’라는 욕망이 들면, 그러니까 ‘나를 주체로 해서 그 사람을 객체로 한 연애 계약을 하고 싶다’라고 생각이 들면 그게 로맨틱 끌림…

마그 제 친구 중에 여성에게 성적 끌림을 거의 느끼지 않고 남성에게 성적 끌림을 압도적으로 느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지금 여자친구랑 연애하고 있거든요. 근데 어떻게 연애를 하고 있냐면, CC인데 서로에게 상부상조하기 위한 CC?

세카 아.

마그 예를 들어 족보 같은 것을 공유하고. 학교생활을 하며 동기들이나 선후배 간의 관계에 더 원활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CC를 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이런 관계는 로맨틱한 끌림과는 좀 멀지 않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연애지만.

세카 목적이 로맨틱 끌림인 연애가 있고 그렇지 않은 연애가 있고... 구별하기가 애매해지긴 하네요.

마그 그러면 ‘로맨틱한 끌림은 로맨틱한 끌림이다’가 되는 거죠.

세카 ‘아무 조건 없이’라고 정의하겠습니다. 아무 조건도 없이 연애 계약을 하고 싶다.

마그 그리고 성적 끌림이 무엇이냐 하면 성적으로 끌리는 게 성적 끌림이고, 로맨틱 끌림은 무엇이냐 하면 로맨틱 끌림이 로맨틱 끌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죠. 왜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이 끌리는 게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물리적인 게 아니니까. 그래서 학술적으로 가면 굉장히 어렵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스님님은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스님 제가 일단은 유로맨틱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예전에 ‘아, 이건 사랑이야’ 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진짜 너무 슬퍼서 그랬던 거거든요. 슬픈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못 하기 때문이고, 제가 하고 싶었던 건 걔랑 뭐 얘기도 많이 하고, 손잡고, 안고... 그런 거였어요. 깊은 정서적 교감을 하고 싶은데 못해서 굉장히 슬펐던… 제가 연애를 하면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공공장소에서 손잡고 걸어 다니는 거랑 백허그... 이런 거거든요.

마그 네.

세카 그런데 스킨십도 로맨틱과 섹슈얼의 어느 사이에 있다고 생각해서 저는 별 감흥이 없을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애인이랑 손을 잡아도 그냥 강아지 손잡는 거랑 똑같은 느낌?

마그 아, 세카님은 그래요?

스님 근데 강아지 손잡으면 너무 좋잖아요.

세카 ㅋㅋ그건 그렇죠. 그런데 얘가 내 주변에 있어서 너무 좋은 것과 별개로 손을 잡는 행위 자체가 근본적으로 만족감을 주는 행위는 아니에요.

마그 저는 손 잡는 행위는 로맨틱한 끌림과 성적인 끌림을 동시에 일으키는 거라고 생각해요.

세카 그런거 같아요. 그래서 좋은 경우도 있고 안 좋은 경우도 있고? 이게 성적인 함의가 있는 손 잡기가 있고 로맨틱한 함의가 있는 손 잡기가 있잖아요.

마그 두 함의가 모두 있는 손 잡기도 있잖아요.

세카 그런데 그 성적인 함의가 담긴 손 잡기를 했을 때는 정말 아무 감흥이 (없어요). 얘가 가까이 있어서 좋은 건 맞는데, 그 성적인 끌림에 보답할 정도의 끌림은 못 느끼는 거죠.

마그 그거야 뭐… 개인마다 차이가 있으니까요. 성행위를 하는 도중에도 성적 끌림보다 로맨틱한 끌림을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왜냐면 무성애자가 아니어도 서로 성행위를 하는 상황에서 무드라던가 분위기를 중시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느끼는 끌림이 로맨틱한 끌림은 전혀 없고 성적 끌림만 있다고 할 수도 없을 거 같아요. 왜냐하면, 분위기라는 거 자체가 어떻게 보면 로맨틱한 끌림을 어느 정도 만들어내기 위해서도 있을 테니까요.

 

에이스플럭스란?

마그 아까 또 에이스플럭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거는 어떤 거예요?

세카 플럭스가 정도의 유동이잖아요?

마그 예.

세카 그러니까 에이스펙트럼 내에서 (유동하는 거에요). 저는 에이섹슈얼이랑 데미섹슈얼을 왔다 갔다 해요. 오토코리섹슈얼도 포함할지는 고민 중인데, 그건 퀘스쳐닝 중이라 잘 모르겠어요.

마그 에이섹슈얼의 여러 정체성들 중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동적으로 두고 계신 거네요?

세카 그러니까 애인을 사귀어도 성적 끌림이 있을 때가 있고 없을 때도 있고 그게 유동적… 그런데 단순히 (특정 대상에 대한) 흥미 있음, 없음이 아니라 끌림의 대상이 있는지, 없는지라서 저는 에이스펙트럼 안에서 왔다 갔다 한다고 생각을 해요.

마그 그러면 그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 떄 자기 자신이 바뀐다는 것을 느끼는 편이에요?

세카 그런데 항상 내가 누구한테 성적 끌림을 느끼는지를 생각하며 살 순 없잖아요. 갑자기 확 ‘내가 성적 끌림을 느끼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 때 가 있고, ‘어, 내가 이번에는…’

마그 빈 느낌이 들어요, 그러면?

세카 음…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요. ‘아, 이 상황은 내가 유성애자라면 성적 끌림을 느껴야 하는 상황인데 그렇지가 않구나’라는 느낌이 들어요.

마그 저는 유성애자지만 24시간 매 순간 성적 끌림을 느끼진 않아요. 만약 에이스플럭스라면 애인을 지속적으로 만날 때 나 자신이 계속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지, 아니면 이런 모습도 내 모습이고 저런 모습도 내 모습이라고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네요.

세카 제가 전 애인을 중학교 때 만났어요. 그때는 성적 끌림을 느껴서 ‘내가 퀴어구나’를 확신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만나니까 ‘좋아하고는 있는데 성적 끌림은 안 느껴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이사이마다 간극이 되게 큰 거죠. 주기가 되게 크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유성애적 사회에 살다 보니 약간의 성적 끌림을 느낀 것만으로도 ‘나는 성적 끌림을 원래 느끼는 유성애자구나’ 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거예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약간 sin 그래프처럼ㅋㅋ.

마그 정확하게 감은 안 오는데 ‘나는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한 순간이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에이스플럭스라고 생각하시는 거잖아요.

세카 저도 100% 내 정체성이다라고 말하기엔... 단어가 중요하다기보단 저는 단어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더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그 저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세카 근데 확실히 에이스다라고 느끼는 건 있어요. 난 확실히 에이스펙트럼이구나.

 

정체성을 ‘이해하기’, ‘받아들이기’

스님 저는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정체성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 그 경험이 겹치면 대강 상상하는 것까지는 가능한데… 예컨대 지금 우리가 대체로 시스젠더라고 생각을 하니까 트랜스젠더나 젠더퀴어나 아니면 젠더 플럭스/플루이드에 대해서 거의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그 아까 스스로가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어에 딱 맞진 않는 느낌이라고 하셨잖아요, 근데 저도 그렇거든요. 왜냐면 저는 아까 말씀드렸지만 제가 게이라고, 동성애자라고 이야기하기엔 이성에게 성적 끌림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가 동성애자라는 것에 완전히 동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양성애자라고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에요. 이런 점에서 저도 단어에 완벽히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걸 느껴요. 물론 단어가 맞지 않음에서 오는 번뇌가 사람마다 있을 수 있는데, 저는 요즘은 그렇게 번뇌하진 않아요. 그냥 나는 나고 내가 성적 끌림을 느끼는 방법대로 나는 성적 끌림을 느끼고 있고 로맨틱 끌림을 느끼는 대로 느끼고 있는 거니까.

스님 그렇죠. 그런데 더 나아가서 그런 단어들이 불필요하다는 논리로 가면 상당히 불편한 상황이 되는 거죠.

마그 네. 저도 그런 단어들이 불필요하다는 건 동의하지 않는 편이지만, 어쩔 수 없이 어떤 사람이 어떤 단어에 당연히 완벽하게 맞을 수는 없다...

세카 자신에게 필요가 없다고 남한테 필요가 없는 게 아닌데... 되게 무책임한 발언 같아요. 뭐 당장 어떤 사람에겐 유성애자랑 무성애자를 나누는 게 이성애자랑 동성애자를 나누는 거보다 더 급한 일일 수도 있고. 그건 개인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건 문제가 없지만 다른 사람이 그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문제 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그 아까 스님님께서 했던 경험이 있었잖아요. 오토코리섹슈얼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고민이 덜어진 거잖아요? 스트레스를 덜게 된 것이니 그런 단어들이 순기능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 단어들이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여러 사람들에게 고민을 해결해 줄 실마리가 되기도 하는데 해체해버리는 거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그게 완벽한 해결책이냐 아니냐의 문제도 있겠지만 일단 단어들이 어느 정도 고민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한다면 저는 해체하지 않는 게 더 좋지 않나 싶어요.

스님 예전에 SNS에서 에이엄브렐라 분이 하신 말씀 중에, 자기가 정체성에 대해서 설명하면 뭐가 그렇게 어렵냐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기는 쉬워서 너네 연애하고 섹스하는 얘기 들어주고 있는 줄 아냐고...

마그 오… 좋은 말인 거 같아요.

스님 그렇게 말씀하신 걸 듣고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세카 우리 사회 너무 유성애 담론만 그냥 퍼져있잖아요.

마그 맞아요.

세카 그래서 무성애가 필요 이상으로 더 목소리를 내야 돼요. 원래 한 10 내야 되면 실제로는 100을 내야 이 유성애적 사회에서 밸런스가 맞는 거죠.

 

정리하며

에이로맨틱·에이섹슈얼 엄브렐라의 일원으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무성애자? 김무성을 좋아하는 거야?” 같은 재미없는 농담도 받아줘야 하고, 종종 무례한 질문에도 답변해야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설명하더라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죠.

가끔은 잊혀져서 아예 보이지도 않고요.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이 대담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에이엄브렐라, 여기 있다!”

  1. 같은 성별에게만 로맨틱 끌림을 느낌. [본문으로]
  2. 지정성별과 본인이 정체화한 성별 정체성이 동일함. [본문으로]
  3. 모든 성별에 끌림을 느끼나, 대부분 같은 성별에게 끌림을 느낌. [본문으로]
  4. 지향성이나 정체성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거나, 이를 확립하지 않은 사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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