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
커플과 솔로. 이렇게 두 단어가 주어지면 커플을 막연하게나마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거나 마땅히 부러워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에 솔로는 안쓰럽게 여기거나 나아가서는 친구들 사이에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흔히들 연애를 하거나 원하지 않으면 이상한 것으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듯 연애라는 것은 이 시대의 대표적인 정상성 중 하나다. 연애에 관심없다고 말해도 언젠간 너도 연애를 하고 싶어할 거라고 가르쳐(?) 주기도 한다. 그 연애라는 게 대체 뭘까. 정서적 교감과 교류? 데이트하는 사이? 스킨십하는 사이? 섹스하는 사이? 결혼의 전 단계?
각각 연애에 속할 수도, 경우에 따라서는 다 다른 얘기일 수도 있는 것들인데, 흔히 생각하는 정상 헤테로 연애는 저것들의 교집합인 것 같다. 난장판이다. 샴푸, 린스와 세제와 치약이 한 데 묶인 종합 선물 세트 ‘행복 가득 4호’ 정도의 느낌이다. 나는 개별 구매하고 싶어했고, 상대방은 종합 세트를 원했던 헤테로 연애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위의 요소들과 젠더 역할에 따라 사회가 짜 놓은 각본이 있었고, 두 배우에게는 그에 맞춘 대사와 행동이 요구되었으며, 그걸 거부할 때면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상대방은 내가 애교나 달콤한 말들, 애정 표현 따위를 해주길 바랐지만 그게 나에게는 늘 어색했고, 들어도 그다지 설레거나 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이상하다고도 섭섭하다고도 했다. 다들 좋아하는 것인데 너는 왜 싫어하냐는 것이다. 사귀면 마땅히 주고받아야 하는 것인데 왜 그러지 못하냐고. 당시엔 그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얘를 안 좋아하나 싶었다. 그런 것들을 경험하고 나서 더욱 연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굳이 연애를 해야 하는지, 나는 연애와 안맞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들도.
그리고 나중에 에이로맨틱(aromantic) 이란 개념을 접하게 됐다. 에이로맨틱이란 연정적 끌림을 그다지 느끼지 않는 사람으로, 알로로맨틱이 연애와 낭만적 관계의 필요성을 느낀다면 에이로맨틱들은 비연애적 관계에서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다. 에이로맨틱에 대해 이들이 감정이 없는 냉혈한이라거나 연애 못하는 사람이라고도 흔히 오해를 하는데, 에이로맨틱함은 감정의 유무나 연애를 하고 말고로 정의되지 않는다. 이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관계와 ‘정상 연애’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알로로맨틱이 누군가에게 반하는 것과 비슷하게 에이로맨틱은 ‘스퀴시(squish)’를 느끼기도 한다. 연정적인 끌림보다는 친구에게 느끼는 끌림에 가까운 좀 더 플라토닉한 감정이다.
나는 꼭 로맨틱한 감정이 없이 친구 관계만으로 충분하다고 느낄 때도, 친구보단 동반자 같은 관계를 원할 때도 있다(생활동반자법 만세).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관계는 배타적일 필요는 없고 서로 구속하지는 않되 서로에게 특별한 것이다. 그게 낭만적인 관계일 수도 아닐 수도, 그 사이 어디쯤일 수도 있겠다. 또 특정 젠더에 끌림이 국한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팬로맨틱(panromantic) 이라고도 생각한다. 나는 에이로맨틱 아니면 팬로맨틱이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팬로맨틱이 아니라면 에이로맨틱일 거라고도 생각한다. 굳이 어느 하나여야 하나 싶기도 하고.
(에이로맨틱, 팬로맨틱, 스퀴시의 정의는 AVENwiki를 참조하였습니다.)
'간행물 > LINQ Vol. IV'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심남의 LGBT 성지 탐험기 : 샌프란시스코 (0) | 2023.04.13 |
---|---|
후원해주신 분들 (0) | 2023.04.13 |
고통이 나를 정의한다 (0) | 2023.04.13 |
무성의한 대담 : 무성애를 말하다 (0) | 2023.04.09 |
문란한 성소수자 (0) | 2023.04.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