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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LINQ Vol. IV

예쁜 나이 25살

by 별빛요정 LINQ 2023. 4. 2.

마그케인

2019년 황금 돼지의 해가 밝고 우리는 25살이 되었다. 연초에 우리는 우리 동네에 있는 술집에 들어가서 술을 먹었다. 비행기의 각 좌석에 스크린이 달려 있듯이 그 술집에는 각 테이블에 스크린이 달려있었는데, 그 스크린을 통해서 술집에 트는 노래도 신청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의 끼가 새어 나왔었다.

“얘, 어서 ‘롤린’ 넣어!”

“‘예쁜 게 죄’ 먼저 틀자! 예쁜 게 죄야!”

많은 노래를 틀고 싶었지만, 우리의 25살을 기념하는 노래를 안 틀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송지은의 ‘예쁜 나이 25살’을 신청곡에 우선 넣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예쁜 나이 25살’이 된 것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벌써 25살이 되었다느니, 25살이면 한창 젊은 나이라느니 하는 그런 이야기가 이어졌었다.

나는 이 25살 친구들을 만난 지 벌써 8년째가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이쪽 어플을 처음 깔고, 처음 만난 이쪽 친구가 우리 동네 이쪽 친구들을 소개해줬었다. 물론 그때 있던 친구들이 다 남은 건 아니지만, 지금 남은 애들은 그래도 빠르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늦으면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봐온 애들이다. 서로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을 열심히 살면서 시간이 날 때 같이 놀다 보니까 어쩌다 보니 세월이 쌓이게 되었고, 우리는 각박한 이쪽 세계에서 갖기 어려운 진정한 우정을 갖게 되었다. 머릿속에 인간관계에 대한 계산이 둔했던 어린 시절부터 같이 놀던 애들이다 보니 서로에게 믿는 구석이라는 것도 생기지 않았나 싶다.

물론 나는 20살 때 우리 동네를 벗어나 포항으로 유학을 오게 되면서 이 친구들과 조금 멀어지게 되었다. 물론 우리 친구들 대부분이 각자 다른 지방으로 유학을 하러 가긴 했지만, 나만큼 멀지는 않아서 서울이나 우리 동네로 자주 갔었던 반면, 나는 우리 동네에 자주 가지 못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친구들을 거의 보지 못하게 되었다. 단톡방에서 주말에 같이 보자는 제안을 여러 번 거절하는 것도 미안해져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우물쭈물댔었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21살이 되던 해 여름부터 꼬박 3년 동안 연애를 하면서 이 친구들을 보기가 더 어려워지게 됐었다. 물론 그런데도 지금까지 간간이라도 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애들이 그런 나의 처지를 쿨하게 넘겨줬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지난여름에 3년간의 연애를 끝내고 이 친구들과 더 자주 만날 수 있게 있었다.

“애들아, 축하해줘. 나 솔로됨!”

“...? 졸라가슴아파…”

“최근 애한테 엄청 시달렸어. 헤어져서 너무 다행이야.”

“엥. 되게좋아했잖아, 서로.”

“어떻게 헤어졌는지 이야기하면 길지, 또. 만나서 이야기해야됨.”

“내일 봐~~. 영석지훈강윤 다모여 오랜만에 ㅋㅋㅋ”[각주:1]

그래도 몇 년 동안 친했던 친구들이니 내 천 일 넘은 연애가 끝났다는 소식을 빨리 전해줘야 할 것 같아서 단톡방에 글을 올렸지만, 우리 중 하나가 3년 동안 남자 친구랑 잘 사귀다가 갑자기 헤어졌다는 소식이 우리에게는 빅뉴스였어서 그런지, 예상과 다르게 너무 빨리 애들과 만나는 일정이 잡혔다. 그리고 이때 이후로 나는 이 친구들을 예전보다 훨씬 더 자주 보게 되었다. 원래 학기 중에는 주말에 애인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비워뒀었는데 이제는 그 시간이 심심해져서 주말에 우리 동네에 올라가서 이 친구들을 보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서 나로 인해 우리 친구들이 더 자주 모이게 되기도 했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몇 년 동안 친하면 안 재밌겠냐마는 이 친구들은 다들 하나 같이 개성이 강하고 재미있는 친구들이다. 일단 내가 제일 먼저 만나게 된 이쪽 사람이자 제일 먼저 사귀게 된 이쪽 친구인 강윤이는 8년째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가 있는 사랑꾼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이쪽 어플을 깔았는데 나와 동갑이면서 나와 같은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한테 쪽지를 보내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그 사람과 친해지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강윤이다. 강윤이는 내가 강윤이를 만난 해의 12월부터 지금까지 한 남자와 연애하고 있는데, 강윤이가 그 친구와 사귀기 전에 나랑 연락할 때 강윤이가 나보고 “나도 같은 고등학교 다니는 애랑 알콩달콩 연애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강윤이는 지금 그걸 기억하고 있을려나 모르겠다.

어느 날 강윤이가 나한테 자기가 만나고 있는 우리 동네 이쪽 친구들이 있는데 같이 놀지 않겠냐고 제안했었다. 용기를 내서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우리 동네 번화가 한복판에 있는 서점 빌딩 1층 로비에서 다 같이 보기로 했었다. 거기에는 나 포함해서 다섯이 있었는데 그 중 강윤이와 나, 그리고 지훈이만 지금까지 계속 우정의 연을 이어가고 있다. 지훈이는 올해 전역 예정인 공익인데 주말에는 종로에 유명한 이쪽 술집에 알바하러 간다. 우연히 할 일이 거의 없고 감시도 거의 없는 꿀보직에 당첨돼서 우리 친구들이 주중 낮에 모일 때에는 항상 지훈이가 일하는 사무실에 가서 수다를 떤다. 지훈이는 지훈이가 모르는 이쪽 애가 없다는 말이 우리 애들 사이에서 돌 정도로 이쪽 세계에 발이 넓다. 영석이가 지훈이한테 자기가 요즘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사람이 지훈이가 직접 아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SNS를 통해 알 수 있는 그 사람의 인맥을 통해 종로에서 ‘기갈’[각주:2]을 부리면서 노는 무리라며 가까이해서 좋을 거 없다는 견적을 내주기도 했다. 나도 3년 연애 후에 새로 만나는 사람에 대한 견적을 지훈이에게 문의하고 싶은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지훈이가 지방 게이들까지 굳이 섭렵하고 있지는 않은 거 같아서 아쉬웠었다. 지훈이는 사람을 이용해먹으려는 분위기가 만연한 이쪽 세계에 발이 넓으면서도 그런 분위기에 물들지 않고 의리관이 뚜렷해서 멋지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지훈아, 너 정말 멋져.

내가 강윤이와 지훈이를 처음 만난 해의 다음 해에 강윤이가 톡방에 자기가 새로 알게 된 친구를 초대해도 되냐고 물었었다. 물론 난 그때 톡을 확인하지 못했었다. 갑작스럽게 톡방 인원수가 하나 늘어서 놀란 마음에 톡을 들어갔는데, 웬걸,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상호가 그 톡방에 있었다. 상호를 안 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였는데 그때 상호는 아무나 붙잡고 뽀뽀를 해대는 애였어서 별명이 뽀뽀귀신이었다. 어렸을 때 뽀뽀귀신을 멀리하고 싶었던 탓도 있었고 내가 어울려 지내던 친구들이랑 상호가 어울려지내던 친구들이랑 결이 안 맞던 탓에 상호랑 나는 서로 누군지만 알고 친하지는 않은 사이였다. 처음 이쪽 어플을 켰을 때 그 뽀뽀귀신의 얼굴이 있었는데 얘랑은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았었는데 우리 톡방에 와버렸던 것이다. 상호는 내가 뽀뽀귀신을 피하고 싶었던 마음을 모르고 나를 반가워했었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분위기를 파토 내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상호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내려놓았고 그렇게 나랑 상호는 친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 톡방에 있는 다섯 명 중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온 영석이는 상호의 초대로 톡방에 들어오게 되었다. 영석이는 나랑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애였는데 톡방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냥 친구의 친구였던 애였을 뿐, 어떤 애인지 관심이 없기도 했고 잘 몰랐다. 톡방에 들어온 이후로 7년 동안 친하면서 느낀 바지만 얜 행동이 과하게 활발한 애다. 그런 과한 활발함으로 가끔 톡방의 나를 포함한 다른 애들한테 도발을 걸 때가 있다. 우리 애들이 모이면 영석이는 항상 “어우! 어디서 비린내 나지 않니?”, “바다 냄새나.”, “이게 포항 냄새니?”와 같은 식으로 계속 도발을 하다가 내가 “일 절만 해. 썅년아.”라고 하면서 걔가 그만 나대는 것은 우리가 모일 때의 주된 레퍼토리다. 20살 때 영석이가 지훈이에게 좀 많이 심한 막말을 해서 지훈이가 영석이가 없는 톡방을 판 적도 있었는데, 1년 정도 시간이 흐르고 영석이가 지훈이에게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사과를 하고 지훈이는 영석이의 용서를 받아주고 영석이가 없던 톡방에 영석이를 초대하면서 화해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개성 넘치는 애들이랑 수년간의 추억이 쌓여서 그런지 만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논다. 나랑 지훈이는 방랑벽이 좀 있어서 어딜 가는 걸 좋아하는데, 우리 애들이 모였을 때 나랑 지훈이가 있으면 우리 동네에서 벗어나서 근교에 놀러 가기도 한다. 우리가 어떻게 노는지, 그리고 어떤 굵직한 일이 있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데 가끔 기회가 된다면 이야기보따리에 있는 이야기를 이 책자에 야금야금 풀어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마치려고 한다.


  1. 영석, 지훈, 강윤 모두 가명이다. [본문으로]
  2. 게이 등이 부리는 앙칼진 기싸움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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