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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LINQ Vol. IV

#Queer 태그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낯선이여

by POSTECH LINQ 2023. 4. 13.

라울

인디게임 플랫폼으로 한국에서 유명한 스팀(Steam, Valve Co.)에는 2019년 1월, 총 3만 개 정도의 게임이 집계되어있다. 그리고 이 게임들은 약 361개의 태그로 분류된다. 이렇게 많은 게임 중에, 퀴어 서사가 있는 게임은 몇 개일까? 그리고 그중에 주인공 격인 캐릭터가 퀴어라는 사실이, 혹은 주변 퀴어인물들과의 관계가 게임의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게임은 몇 개일까.

흥미롭게도, Steam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묶음 게임 중에는 Queer game bundle도 있다(2019년 2월 현재 2탄까지 존재). 그 묶음에는 퀴어적인 요소가 조금 들어있는 게임도 있고, 주인공이 퀴어라는 사실이 게임 진행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게임도 있다. 외국에서 인디게임 플랫폼으로 유명한 itch.io 에는, 놀랍게도, LGBT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꽤 많은 게임이 나온다. 또한, 기한 내에 특정 주제로 게임을 만드는 ‘게임 잼(Game Jam)’ 에 성소수자 관련 주제로 진행될 때가 종종 있다. 나와 있는 모든 게임을 해보진 않았지만, 게임이라고 말하기 모호한 것도 많아 아쉬움이 남는다.

퀴어라는 컨텐츠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퀴어서사를 포함하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은 성 소수자라는 주제로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생각하는 고민거리일 것이다. 어쩌면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퀴어를 주제로 하는 게임이 주제를 명확하게 표현하려면 한계점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던전을 탐험하는데 캐릭터의 성별이 큰 영향을 줄까? 혼자 퍼즐을 풀어나가는 게임에서 ‘사랑’이라는 요소가 나오지 않는데 그 캐릭터가 동성애자인지 양성애자인지 설명을 할 수 있을까? 결국 표현하지 않으면 플레이어들은 디폴트값인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로 인식하게 된다(혹은 아예 생각을 하지 않거나).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 나온 퀴어를 주제로 다루는 게임은 스토리에 큰 비중을 두었다. 내가 소개할 게임도 주로 비주얼 노벨류(화면이나 선택지를 클릭할 때마다 일정량의 문장이 화면에 표시되어 시나리오가 진행되는 방식)거나 방대한 양의 텍스트를 다룰 수 있는 게임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물체를 클릭하면 데이터가 나오고, 그 데이터 속에서 답을 찾아 그다음으로 진행되는, 마치 방 탈출 게임인데 탈출이 목표가 아니라 결과 혹은 과정을 찾아내는 게 목적인 그런 게임이다. 단서를 찾기 위해 텍스트를 읽어야 하고, 읽으면서 플레이어가 주인공이나 관련 인물이 퀴어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개연성있게 설계하기 쉽기 때문이 아닐까.

퀴어 게임 서사들이 나아가야 할 최종 방향은 이 캐릭터가 퀴어라고해서 특별한 무언가가 없는, 하나의 캐릭터 특성일지도 모르지만, 현 시점에서는 퀴어 주인공이 나와서 “나는 퀴어다!” 라고 외치는 게임들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깊이 성소수자 이야기를 다루지 않아도 다른 방향에서 편의를 고려하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유비소프트 사는 최근 「파 크라이:뉴던」 에서 캐릭터를 생성할 때 ‘성별 선택’이라는 단어 대신 ‘신체 유형 선택’이라는 단어를 썼다!

현 시점에서는 퀴어서사를 중점으로 다루는 게임이 소중하지만, 언젠간 지나가는 캐릭터 1이, 어떨 때는 주인공이 살짝 흘리는 말들에 다양한 퀴어 요소가 들어가길 바란다. 게임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그 퀴어 캐릭터를 응원하게 된달까? 그리고 앞으로 점점 사회가 변하니 그에 따라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들이 퀴어관련 게임도 많이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Take my money!


게임 소개를 시작하기 전, 이 소개는 오로지 주관적 감상을 담고 있음을 밝힌다. 한글패치가 존재하는 게임 위주로 서술했으며, 몇몇 게임은 스포일러가 게임의 재미를 반감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스포일러가 될만한 내용은 적지 않았다.

앞 4개의 게임은 Steam 플랫폼에서, 마지막 2개의 게임은 itch.io 에서 플레이 할 수 있다.

A normal lost phone

퍼즐 #수사관 #캐주얼 #인디 #내레이션

이 게임은 퀴어서사가 들어감과 동시에 퀴어(특히 정체성)에 대한 설명까지 들어있다. ‘A normal lost phone’이라는 제목과 “수사관”이라는 태그가 보여주듯 플레이어가 한정된 단서 내(핸드폰)에서 애플리케이션 등의 비밀번호를 추리하여 폰 주인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게임이다. 난이도는 이러한 수사관류 게임들에 비해 어렵진 않은 편이며, 플레이 타임은 약 2시간 정도이다. 스토리가 짜임새도 있고 퀴어에 관한 내용도 괜찮으며, 가격도 싼 편이니 많은 사람이 이 게임을 즐겼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게임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전달하는 요소가 많아 비슷한 게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Gone home

#3D #1인칭 #걷는시뮬레이션 #인디 #탐험 #3D

어두운 집안을 돌아다니며 물체를 찾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단서를 찾는 게임이고 1인칭 시점이니만큼 3D 멀미가 있는 사람은 조심하길 바란다. 적어도 나는 멀미를 했다. 해외에서 돌아온 주인공이 집에 간만에 돌아왔으나 집엔 반겨주는 이가 없어, 집 안 곳곳에 놓여있는 단서들을 발견하며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가는 게임이다. 돌아다니며 물체를 찾는 것에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데에 비해 스토리가 짧은 것이 좀 아쉽다. 이 제작사의 또 다른 게임인 TACOMA에도 퀴어가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은 아니라 생각하여 제외했다.

One night hot springs

#Free #인디 #시뮬레이션 #비주얼노벨 #선택의중요 #캐주얼

트랜스젠더 주인공이 친구로부터 온천여행 제의를 받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임이다. 실제로 당사자가 고민, 생각하는 부분을 플레이어에게 굉장히 잘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부드러운 그림체만큼이나 다른 캐릭터의 반응들도 딱히 혐오적인 시선이 담겨있진 않으니 두려움은 접어도 좋다. 게임 자체는 간단하며, 플레이 타임도 길지 않아 부담감 없이 할 수 있는데 스토리의 완성도도 높은 편이며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건 덤! 캐릭터의 대사에서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으니 힐링 게임을 선호하는 이들은 플레이해보자. 참, 모바일로도 가능하다.

Night in the Woods

#선택의중요 #캐쥬얼 #인디 #플랫포머

대학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온 주인공 메이가 고향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친구들과 놀러가는, 단편 에피소드 형식의 플랫포머 게임이다. 플랫포머이지만 각각의 미니게임들의 난이도는 높지 않으며, 오히려 매일 같은 마을을 돌아다녀야 해서 지루할 수도 있으나 각 에피소드가 전하는 이야기들과 게임 속 새벽감성들은 매일 반복되는 날들마저 기다려지게 만든다. 성소수자라는 주제를 중점적으로 다루진 않지만, 에피소드에서 퀴어성을 빼면 아쉬운 게임이라 소개한다. 이 게임 역시 플레이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아래는 스팀 플랫폼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나에게 특별한 게임이라 소개한다.

Coming Out Simulator 2014

#Free #시뮬레이션 #선택의중요 #인디

2014년에 나온 게임으로, 이름이 말해주듯 커밍아웃을 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게임 제작자가 실제로 겪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경험을 부분적으로 각색을 하여 만들었다. 커밍아웃이라는 소재는 벽장에서 나가고자 하는 퀴어에게 필수 코스이면서도 매번 새로운 상대에게 하기 때문에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갈지 예측하기 힘들다. 특히, 친권자에게는 더 그렇다. 게임상의 선택지는 모두 저마다의 그럴듯한 이유를 담고 있다. 플레이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중에서 틀린 선택지는 없으며, 모든 것이 진실일 수도, 모든 것이 거짓일 수도 있다. 플레이하며 커밍아웃을 하지 않고 거짓을 이야기하여 스스로를 보호할지, 커밍아웃을 하고 현실을 받아들일지 그 사이의 긴장감을 느껴 보자.

Trans Coming Out Simulator 2018

#Free #시뮬레이션 #선택의중요 #인디

위 COS 2014를 오마주하여 다른 사람이 만든, 트랜스젠더 커밍아웃 시뮬레이터이다. 이 게임 역시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기존 COS가 동성애자를 다룬다면 TCOS는 트랜스젠더가 커밍아웃을 하는 내용이며, 원작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느껴진다. 한국에서 만들어졌기에 한국식 정서가 들어있고, COS 2014와 TCOS 2018은 커밍아웃의 현실에 대해 다룬 게임들이니만큼 다른 게임들보다 혐오발언이 많이 나오는 편이니 주의하자. 플레이 타임은 짧지만 선택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니, 언제나 선택은 신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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