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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LINQ Vol. IV

트랜스젠더에 대한 업데이트가 필요합니다

by POSTECH LINQ 2023. 4. 15.

라울

최근 내 친구는 수술을 받았다. 1000만 원이 넘는 거금을 들여 홀로 타지에 나가 수술을 받고, 큰 수술임에도 병원에는 일주일 채 입원하지 못해 근처 호텔에서 묵으며 회복 중이라고 한다. 채 아물지 않은 상처를 계속 덧내며 수술 부위가 닫히지 않게 해야 하고, 골반 언저리가 퉁퉁 부어서 밖에 나가기도 힘든 그 친구는 트랜스여성[각주:1]이다. 현재 우리나라 법은 성기를 수술해야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해준다. 요즘에는 판사 재량에 따라 성기 재건 수술을 받지 않아도 주민등록번호를 바꾼 판례가 여럿 생기고 있다.

사회는 트랜스젠더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요구가 충족되어야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준다. 아직은 그렇다. 여기에 트랜스젠더임을 들킬 가능성이 있는 직업군을 빼면 할 수 있는 일은 더 적어진다. 디스포리아[각주:2]로 인해 현실과 타협하기 힘든 사람들은 성별을 크게 요구하지 않는 곳을 찾기도 하고, 여중·여고처럼 학력에 성별이 들어가 있으면 ‘여자’ 표기를 지워서 제출하기도 한다.

그런 트랜스젠더에게 “사회적인 틀에 대항하기보다 내 자신의 성별을 바꿔서 세상에 맞추는 게 더 쉽다고 느껴서” 라고 말하는 무리가 있다. 자신을 ‘급진’ 페미니스트라고 명명하는 사람들은, 오직 여성만을 위한 (요즘은 ‘탈코르셋[각주:3]을 한 여성들을 위한’으로 범위가 좁아진 듯하다) 운동을 한다. 그들은 트랜스젠더를 인정하지 않으며, 트랜스젠더는 오히려 ‘성 고정관념을 고착화한다’고 한다. 더 나아가, 트랜스여성을 ‘트젠남’으로 표현하는 등 (원래 트랜스남성은 태어날 때 여성으로 지정되었으나 남성으로 정체화한 트랜스젠더를 일컫는다) 페미니즘에 반(反)하는 행동을 해서 혐오하는 것이 아닌,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혐오하는 경우도 많다.

◀ 무엇이 우리를 TERF[각주:4]로 만드는가(@whatmakesusterf)에 있는 만화 中. 사회적 틀에 대항하기보다 집에서 쫓겨나고, 1000만 원 이상의 돈을 써서 수술을 받고, 법원에 서류를 내고 심문받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하나보다.

트랜스젠더가 성 역할을 고착화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트랜스젠더에게 사회가 강요하는 것들부터 알아야 한다. 여장남자를 개그로 소비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연출하는 대중매체, 트랜스젠더라는 것이 알려지면 가해지는 언어적, 물리적 폭력 등 앞서 언급한 요구사항이 충족되지 않으면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남성, 여성의 틀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지 않으면 트랜스젠더(DSM-5[각주:5], F64.0 [각주:6])임을 진단받는 정신과나 일상생활에서, 정체화한 성별이 아닌 다른 성별로 인식 당하는 경우가 잦다. 특히나 호르몬요법이나 수술을 받을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이분화된 성별의 경계선에서 늘 줄타기를 하고 있다. 트랜스젠더의 수가 결코 많지 않은데, 과연 몇몇이 하는 행동들이 성 역할을 고착화한다고 볼 수 있을까?

남성과 여성, 이분화된 성별로 정체화한 트랜스젠더 외에도, 그들은 젠더퀴어[각주:7]를 인정하지 않는다. 염색체나 성기를 중심으로 여성(XX)과 남성(XY)을 구분하며, 성기를 바꾼 경우 ‘인공’이라며 조롱한다. 생물학적 성별로 구분하는 것도 지극히 성기 중심적이며 이러한 성기 중심적 구분은 오히려 성별 이분법을 강화한다. 성호르몬의 영향이 2차 성징에 강하게 영향을 끼치고, 그 영향으로 사회적으로 규정된 남성적 특징과 여성적 특징이 나뉘는데 성기 중심적인 구분이 과연 성차별을 없앨 수 있는지 의문이다.

◀ 성희롱, 성폭력 온라인 예방 교육 중 <젠더> 부분. 생물학적으로 성별은 SRY 유전자에 의해 발현되어 XY 여성, XX 남성이 존재할 수 있다.

또한 트랜스젠더 이야기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문제가 성중립화장실이다. 몇몇 사람들은 성중립화장실을 만들면 여성이 더 안전해지지 못하고, 불편해진다고 하지만 이는 단편적인 생각이다. 현재 존재하는 남자, 여성화장실을 없애고 반드시 모두 성중립화장실로 만들자는 말이 아니다. 서울에서 열린 서울 퀴어퍼레이드에서는 인원수가 많아 모든 화장실을 성중립화장실로 이용했지만, 서울의 한 병원에서는 성중립화장실 (가족 공용 화장실)과 여자화장실로 분리되어있다. 이렇듯 대안이 존재함에도 우선 반대만을 외치는 사람들은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혐오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혐오는 상당히 유사한 형태로 나타난다.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트랜스 혐오, 장애인 혐오 등 다양한 혐오가 주체만 바뀐 채 반복되고 있다. 여성은 보통 치마를 좋아하고, 꾸미기 좋아한다는 것이 잘못된 사실임은 바로 알아채면서, 트랜스여성은 보통 치마를 입고 싶어 하고, 꾸미기 좋아한다는 말이 잘못된 것임을 알아채지 못하는 걸까? 다양한 모습의 여성이 있는 것처럼 다양한 모습의 트랜스여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걸까?

퀴어 내부에서는 점점 생각하는 것들이 많아지는데, 정작 혐오자들과는 같은 주제에서 같은 이야기로 소모전만 하고 있다. 트랜스여성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혐오하는 사람들은 정보를 업데이트할 필요성이 있다. 그 단편적인 모습 중 어떠한 속성 때문에 트랜스여성이 여성이 아니라면, ‘진짜’ 여성을 판별하는 기준은 무엇이 되는 걸까. 트랜스여성을 보며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배제하는 사람들은 결국 다른 시스여성들에게서도 그런 모습을 보게 될 것이고, 그 여성들마저 배제하게 될 것이다.

  1. 출생 시 남성으로 지정되었으나 여성으로 정체화한 사람. [본문으로]
  2. 출생 시 부여받은 성별과 스스로가 정체화한 성별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것에서 받는 불쾌감. [본문으로]
  3. 벗어나자는 뜻의 탈(脫)과 여성 억압의 상징 코르셋(corset)을 결합한 말. [본문으로]
  4. 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 의 약자.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급진적 여성주의. [본문으로]
  5. 미국정신의학회,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 5판, 권준수 옮김, 학지사, 2015. [본문으로]
  6. 성별 불쾌감 (gender dysphoria). 호르몬이나 수술 및 성별 정정을 하기 위해서 받아야하는 코드. [본문으로]
  7. 젠더를 남성과 여성, 둘로만 분류하는 기존의 이분법적 성별 구분을 벗어난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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