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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LINQ Vol. IV

범성애 아세요?

by POSTECH LINQ 2023. 4. 15.

범성애[각주:1] 아세요?

세카

퀴어문화축제에 관한 포스텍 라운지의 반응을 기억한다. 개중 가장 웃긴 댓글은 “동성애자들이 기숙사에 사는 것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댓글을 쓴 작성자에게 동성애자가 아니지만 퀴어인 나는 존재해도 존재하지 않고, 보여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작성자에게 반대로 질문한다. 나는 대부분 동성에게 끌림을 느끼니 동성애자와 동일한 취급을 받아야 할까? 그럼에도 모든 성별에 끌림을 느끼니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인 걸까? 그렇다면 독채에서 살아야 되는 것 아닌가? 아니, 몇 개의 예외를 제외하고 거의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으니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존재인 걸까?

나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시스젠더[각주:2] 여성 옴니[각주:3]-호모플렉시블[각주:4] 데미로맨틱[각주:5] 에이스플럭스[각주:6]다. 하지만 이 단어도 완벽하게 나를 설명해준다고 느끼지는 않는다.[각주:7] 나는 계속 퀘스쳐닝[각주:8] 중이다. 나는 그레이젠더[각주:9]일 수도, 젠더플럭스[각주:10]일 수도, 팬섹슈얼[각주:11]일 수도 있다. 아마 어쩌면 영구적인 퀘스쳐너[각주:12]일지도 모른다.

비퀴어 집단에서 나는 시스젠더-제드[각주:13]-헤테로[각주:14] 여성으로 패싱된다. 나의 본질과 다른 존재로 인식되는 것은 불편할 뿐 아니라 폭력적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퀴어 집단에서도 같은 기시감을 종종 느낀다는 점이다.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단어들이 너무 복잡해서 같은 성소수자라도 단번에 이해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퀴어 용어에 대한 한 편의 강의를 준비해가야 한다. 그래서 내 정체성에 대해 이해시키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심지어, 나 역시 시스-모노[각주:15]-제드 퀴어 집단에서 분위기를 깨지 않도록 유로맨틱[각주:16] 유성애자[각주:17] 레즈비언으로 패싱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사실에 종종 자괴감을 느낀다.

논모노섹슈얼[각주:18]과 에이엄브렐라[각주:19]는 패션 퀴어[각주:20]라는 혐오 발언을 들은 기억은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다. 링큐에 들어가기 전, 면담을 할 때도 나는 내가 에이엄브렐라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중학생 때, 퀴어 친구에게 내가 데미섹슈얼[각주:21]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의 반응은, “네가 그럴 리 없어.”였다. 그 뒤로 누구에게도 나의 에이섹슈얼리티[각주:22]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일단 아직 퀘스쳐닝 중이니 안전하게 가는 게 맞지 않아?”, “혹시 이 사람들조차 에이엄브렐라가 패션 퀴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스스로 만들어 낸 혐오 발언들은 나의 의식을 갉아먹었고, 성소수자 모임에서조차 ‘진짜 나’를 드러낼 수 없게 만들었다. 링큐가 꽤나 안전한 공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다.

올해 부산퀴어문화축제에서는 갑자기 한 사람이 무지개 깃발을 온 몸에 두르고 있던 나를 붙잡았다. “학생, 이게 좋아요?” 한창 퀴어력을 충전하고 있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좋아요!” 그분은 이러면 우리나라가 망한다는 둥, 부모님이 이러고 계시는 걸 아냐는 둥, 혐오 발언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 혐오 세력이 있다며 소리질렀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그래도 혐오 발언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물었다, “범성애 아세요?” 혐오세력은 순간 당황했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당황한 혐오자를 뒤로 한 채 행사장으로 걸어가던 그때는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 혐오세력은 아마 내가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했겠지. 유행에 휩쓸리는 철없는 청소년 성소수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질문을 통해 당신의 생각을 전복하고 싶었다. 나는 당신의 옹졸하고 좁은 세계를 깨부수러 온 퀴어라고. 당신의 투명한 혐오 속에 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가끔 살아 숨쉬는 일 자체가 퀴어 운동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나는 존재로써 투쟁한다. 생각하고, 환희하고, 분노하는 모든 일이 해방이다. 나는 외치고, 묻는다. “범성애 아세요?” 단순히 나의 존재를 묻는 질문이 아니다. 소멸되지 않기 위한 마지막 발악이다. 아무도 핍박하지 않지만, 그래서 핍박받는 존재들을 어루만져 주기 위해서다.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행위가 더 이상 무의미한 외침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와는 다른 존재로 인식되는 폭력을 이제는 멈추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는 어디에나 존재한다.”라는 단순한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앞으로도 당신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할 것이다. “퀘스쳐닝 아세요?”, “에이엄브렐라 아세요?”, 그리고 “범성애 아세요?!”

  1. 어느 젠더에게든 끌림을 느끼거나, 모든 젠더에게 끌림을 느끼는 것.(애슐리 마델, LGBT+ 첫걸음, 팀 이르다 옮김, 봄알람, 2017, 25쪽.) [본문으로]
  2. 태어날 때 지정된 섹스 또는 젠더가 젠더정체성과 일치하는 사람.(위의 책, 16쪽.) [본문으로]
  3. 어느 젠더에게나 끌림을 느낄 수 있거나, 모든 젠더(들)에게 끌림을 느낄 수 있음. 끌림을 느끼는 데 있어 젠더가 자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느낌. (위의 책, 199쪽.) [본문으로]
  4. 자신과 같은 젠더에 주로 끌리기는 하지만 예외를 허용하고 인정함. (위의 책, 201쪽.) [본문으로]
  5. 감정적 유대를 깊게 맺은 사람들에게만 로맨틱적 끌림을 경험함. (위의 책, 12쪽.) [본문으로]
  6. 무성애적 스펙트럼(ace spectrum) 내에서 항상 존재하면서, 유동하는 지향성을 가짐.(위의 책, 229쪽.) [본문으로]
  7. 결국 책자 발간 직전 젠더퀘스쳐닝 옴니-진플렉시블 데미로맨틱 에이스플럭스로 재정체화했다. 하지만 재정체화를 통해 얻은 이름표 역시 나를 완벽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고 느낀다. [본문으로]
  8. 스스로의 성적/로맨틱지향성이나 젠더 정체성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것. (위의 책, 23쪽.) [본문으로]
  9. 젠더를 약하게 느끼거나, 스스로의 젠더정체성이나 젠더표현에 대해 다소 무관심한 특성이 있는 정체성. (위의 책, 10쪽.) [본문으로]
  10. 젠더 경험의 강도가 변화하는 (변동을 거듭하는) 사람. (위의 책, 22쪽.) [본문으로]
  11. 어느 젠더에게나 끌림을 느낄 수 있거나, 모든 젠더(들)에게 끌림을 느낄 수 있음. 많은 팬은 끌림을 느끼는 데 있어서 젠더가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느낌. 반면, 젠더가 다른 사람들에게 끌림을 느끼는 데 분명히 역할을 한다고 확실히 느끼는 팬도 있음. (위의 책, 195쪽.) [본문으로]
  12. 퀘스처닝을 하는 사람. [본문으로]
  13. 성적 끌림이나 로맨틱 끌림을 경험하는 사람. 다시 말해 에이섹슈얼/에이로맨틱 스펙트럼에 없는 사람. (위의 책, 20쪽.) [본문으로]
  14. 이분법적 젠더 구도 안에서 다른 젠더(즉 남성은 여성, 여성은 남성)에게 끌리는 것.(위의 책, 26쪽.) [본문으로]
  15. 오직 한 젠더에게 끌림. (위의 책, 13쪽.) [본문으로]
  16. 로맨틱 끌림을 경험하는 사람. 다시 말해 에이로맨틱 스펙트럼상에 없는 사람. (위의 책, 20쪽.) [본문으로]
  17. 성적 끌림을 경험하는 사람. 다시 말해 에이섹슈얼 스펙트럼상에 없는 사람.(위의 책, 20쪽.) [본문으로]
  18. 하나 이상의 젠더에게 끌림. (위의 책, 13쪽.) [본문으로]
  19. 엄브렐라는 하나 이상의 정체성/지향성/집단을 집합적으로 설명하거나 지칭하는 단어 또는 어구임. 에이엄브렐라는 무연정적/무성애적 스펙트럼의 모든 정체성을 포괄적으로 지칭함. (위의 책, 17쪽.) [본문으로]
  20. 특별해보이기 위해 성소수자가 아닌데도 성소수자로 정체화하는 사람. [본문으로]
  21. 감정적 유대를 깊게 맺은 사람들에게만 성적 끌림을 경험하는 사람. (위의 책, 12쪽.) [본문으로]
  22. 성적 끌림을 거의 느끼지 않거나 전혀 경험하지 않음을 나타냄. 이 글에서는 에이섹슈얼 엄브렐라에 포함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단어로 쓰였음. (위의 책, 17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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