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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LINQ Vol. IV

스카이캐슬, 우리는 정말 같은 드라마를 보았나

by POSTECH LINQ 2023. 4. 15.

스님

지난 겨울, 과도한 입시 경쟁을 풍자한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비지상파 방송으로는 기록적인 23.8%라는 시청률을 달성하며 전국적인 돌풍을 일으켰다. 온라인에서 2차 창작과 패러디가 넘쳐났으며, LINQ에서도 극 중 장면과 대사를 신입생 환영(?) 현수막에 활용한 바 있다. 이 글은 스카이캐슬의 열기가 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 인기에 편승해보려는 시도이다.

이렇게 묘사하니 마치 전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한 드라마에 열광했던 것처럼 들리지만, 뜯어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집단에 따라서, 또는 처한 상황에 따라서 드라마의 서로 다른 요소에 몰입하고, 기대하고 또 실망했으며, 나는 그중에서도 성소수자들이 본 스카이캐슬은 어떠했나에 대해 말하고 싶다. 여기서 내가 주장하는 대부분은 아무 통계도 근거도 없는 뇌피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크게 인기를 끈 드라마를 보는 또 다른 작은 흐름을 소개함으로써, 서로 다른 문화와 관점을 공유하고 대화의 폭을 넓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쓴다. 우리는 정말 같은 드라마를 보았을까?

나는 스카이캐슬이 퀴어판[각주:1]에서 특수한 인기를 끌었다고 주장하겠다. 예를 들어 1월 12일(토) 밤 10시 30분에 방영된 KBS 심야토론에서는 ‘혐오와 차별’을 주제로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출연해서 발언하였는데, 이때 모 카톡방에서 “성소수자 방송이 같은 시간대에 두 개”라는 한탄이 나왔을 정도이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은 내가 관찰할 수 있는 퀴어들이 몇몇 한정된 집단에 소속되어 있거나 특정 SNS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인데, 집단이 좁고 폐쇄적인 만큼 어느 이상 인기를 얻은 콘텐츠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지기 쉽다. 실제로 본방 시간에 SNS를 켜두면 마치 안방에서 수십 명이 함께 (욕하며) 드라마를 보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었으며, SNS상 대화에 끼기 위해 드라마를 시청한다는 퀴어도 다수 목격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다는 아니다.

퀴어판에서 스카이캐슬이 누린 인기의 진짜 이유는 이 드라마 자체에 내재한 ‘퀴어함(queerness)’에 있다. 먼저 스카이캐슬은 관계자들이 반복해서 밝히듯, 분명히 ‘여자들의 이야기’이다.[각주:2] 그만큼 남성 배우들의 역할은 보조적이고 제한적이며, 한국 드라마가 못잃어 하는 소위 ‘헤테로(이성애) 로맨스’가 설 자리가 없다.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우주의 혜나를 향한 짝사랑만이 외롭게 떠다닐 뿐이다. 반대로 극 중 여성 배우들 간의 갈등과 연민, 대립과 연대는 두드러지며, 이는 시청자들이 퀴어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혀준다. 실제로 주영서진, 주영예서, 혜나예서, 서진희(서진진희), 승찐(승혜진희) 등 수많은 여여 커플링 팬을 양산했으며, 심지어 극 중 단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주영진희가 인기를 끄는 등[각주:3] 거의 nC2에 육박하는 커플링 맛집 드라마로 이름을 날렸다. 스카이캐슬의 퀴어함은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좋아하고 결혼은 필요 없고 퀴어 연기가 하고 싶은 김서형 배우의 “사랑해, 예서야”라는 애드립(!)[각주:4]에서 절정을 이룬다.[각주:5]

남남 커플링의 경우 훨씬 떡밥이 적었지만, BL러로써 기서(기준서준)를 열심히 파면서 드라마를 본 만큼 조금만 언급하고자 한다. 듀나 작가가 칼럼[각주:6]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스카이캐슬의 작가는 “실제 남자아이들을 그릴 생각이 없으며 그들을 똑바로 볼 의지도 용기도 없”었고, 이 지점에서 오히려 드라마의 퀴어함은 증대된다. 퀴어함은 비규범성에서 나오는데,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 여성 배우는 입체적이고 극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때 비규범적이며, 남성 배우는 반대로 납작하고 수동적이고 순종적일 때 비규범적이다. 엄마 말 잘 듣고 공부 잘하고 우애 깊은 잘생긴 쌍둥이는 존재 자체로 퀴어(queer)하며, 시청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야, 형”이라니 진짜 말도 안 돼…

드라마의 퀴어함이 퀴어 커플링으로만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비규범성이 허용하는 것은 곧 다양성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입시 코디 김주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맞고 사는(?) 조선생 역시 규범적인 캐릭터는 아닌데, 아니나 다를까 김주영의 ‘멜섭’[각주:7]으로 불리며 상당히 퀴어하게 해석되곤 했다. 지금까지 열거한 요소들을 하나도 소비하지 않았더라도, 1년 365일 이성애와 정상가족의 이미지에 둘러싸여 지내는 성소수자 시청자들에게 스카이캐슬이 주었을 편안함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니 예정된 파국이었을까, 극 중 남자 배역들이 멀쩡한 사람들인 양 목소리를 높이고, 모든 가족이 규범적 정상가족으로 회귀한 결말에서 퀴어들의 스카이캐슬 사랑은 봄눈 녹듯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는 그만큼 서로 다른 드라마를 보았다. 그렇지만 이런 마이너한 흐름도 이 드라마의 소비를 풍성하게 하는 데 기여하지 않았을까? 언젠가 우리가 마주 앉아서 드라마 하나를 보는 데에도 서로가 얼마나 다른지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미래를 꿈꾼다. 그리고 그런 대화들이 쌓여 우리 사회의 문화를 더욱 다채롭게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1. 그래봐야 실체가 없는 집단이지만... [본문으로]
  2. 정가영, “‘SKY 캐슬’ 조재윤 “촬영 내내 행복했던 행운의 작품””, 스포츠월드, 2019년 2월 10일,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96&aid=0000502909. [본문으로]
  3. JTBC 모 예능에 두 배우가 공동출연하며 관련 주식이 떡상하였다. [본문으로]
  4. 김수정, “‘SKY 캐슬’ 김서형 “‘사랑해 예서야’ 대사, 원래 없었다””, 노컷뉴스, 2019년 2월 7일, https://nocutnews.co.kr/news/5100303. [본문으로]
  5. 물론 마냥 좋다고 소비하기에는 코디 김주영과 예서의 특수한 관계 등 고찰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본문으로]
  6. 듀나, “‘SKY 캐슬’ 유현미 작가만 알고 우리는 몰랐던 것들”, 엔터미디어, 2019년 2월 2일, http://www.entermedia.co.kr/news/news_view.html?idx=9239. [본문으로]
  7. B‘DS’M 문화에서, 지배(Dominant)-복종(Submissive) 관계에 있는 복종하는 역할의 남성을 부르는 말. 반대는 멜돔, 여성의 경우 펨섭, 펨돔 등으로 불린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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