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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LINQ Vol. IV

친구? 연인?

by POSTECH LINQ 2023. 4. 30.

박민선(초청 기고)

필자는 포스텍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있고, 과학기술학 융합부전공도 해보려고 하는 학부생이다. 교육 관련 현안을 다루는 총학생회 산하 전문기구인 학생교육위원회에서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성과 친구로만 지내는게 가능한가요?” 인터넷 커뮤니티를 항상 뜨겁게 달구는 이야깃거리이다. 그래서 ‘남자사람친구(남사친), 여자사람친구(여사친)’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한쪽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냐고 다 잠재적인 연인 관계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왜 굳이 그렇게 갈라서 생각하냐고 그러면 세상에 친구가 어디 있냐고 한다.

앗, 여기까지만 들었는데도 벌써 불편한 것 투성이다. 지극히 이성애 중심적인 논쟁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논리대로라면 범성애자는 그 어떤 사람도 친구로 사귈 수 없다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아주 개인적으로는, 굳이 저렇게 성별을 기준으로 삼아 친구와 연인 후보로 나누어야 하는지, 친구와 연인을 나누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사람에 따라 성별은 연인 관계의 필요조건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과 연인 관계를 맺을 때 그 사람을 이루는 많은 요소(외모, 성격, 취미 등)들을 유심히 살펴본다. 어떤 요소들을 고려하는지는 각자 다르겠지만, ‘성별’ 만을 보고 이 사람과 연애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리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여성 이성애자의 입장에서, 연인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남성이겠지만, 남자라는 것만을 이유로 그와 연인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친구 관계를 맺을 때에도 우리는 그 사람을 열심히 관찰한다. 자신과 친해지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면 친구로 지내게 되는데, 여기에 (사회적으로는) 연인 관계 이상으로 성별이 개입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더 나아가, 친구와 연인의 정의는 과연 명확한가? 사랑이 무어냐고 묻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뭐라 딱 말할 수는 없지만 그걸 느끼는 순간 사랑인 걸 깨닫는다는 식으로 답한다. 사랑을 설명해보라고 했을 때 그것이 우정과 다른 객관적인 특징을 나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좋아하거나 사랑한다는 것은 이성(理性)에 근거한 논리라기 보다는 개인의 감정에 해당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행복하고 슬픈 감정을 느끼는 데에 차이가 있듯, 우정과 로맨틱함,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 구분 짓는 선이 다 다를 수도 있다. 그것을 드러내는 방법과 행위 또한 감정과 직결된다고 볼 수도 없다. 물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애매한 영역이 있기에 사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는 ‘비쥬’라고 불리는 볼뽀뽀와 유사한 형태의 인사를 일상적으로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남자와 여자가 이렇게 인사하고 있으면 높은 확률로 주변 사람들에게 굉장히 ‘돈독’한 관계로 오인 받기 십상이다. 다른 사람의 관계를 함부로 우정이다 사랑이다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함부로 판단하려 드는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은 수많은 인간의 구성 요소와 자신의 취향을 내버려두고 굳이 ‘성별’에 집착하고,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방법 중에 특히 ‘연애’에 집중한다. 어쩌면 현대 사회에서 성별은 조금은 부질 없는 특성일 수도 있고 연인과 친구 관계에 대한 생각이 개개인마다 다 다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어차피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도 없는데 나 혼자 성별과 관계를 고민하고 의심하면서 고생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게다가 성별을 이유로 우리의 미래 친구 후보 목록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지워지는 것 또한 너무나도 안타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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