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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LINQ Vol. IV

성을 넘어선 사랑

by POSTECH LINQ 2023. 4. 30.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이진우 교수님(초청 기고)

어느 사회나 수많은 편견과 선입견에 둘러싸여 그 정체를 확인하기 힘든 말 하나쯤 갖고 있다. 우리는 어떤 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그 말과 관련된 기억과 경험을 연상한다. ‘낮’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밤’ 또는 ‘밝다’는 단어를 떠올린다. ‘밤’이라는 낱말을 들은 뒤 얼마 후 ‘별’이라는 단어를 보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공포’라는 단어를 보면 우리는 대개 유령을 떠올린다. 이처럼 어떤 단어가 유발하는 연상 작용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점화 효과라고 한다.

연상 작용은 문제의 이해를 돕기도 하지만 문제를 은폐하거나 심각하게 왜곡하기도 한다.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것이 유발하는 연상 효과로 말미암아 문제가 더욱 복잡해지거나 모호해지는 낱말이 있다. 낱말이 기억을 떠올리고, 기억은 감정을 유발하며, 감정은 다시 거부와 혐오와 같은 반응들을 일으킨다. 이런 연쇄적 연상 활동들로 본래의 문제는 사라지고, 그 낱말과 관련된 감정과 편견만이 강화된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얘기를 직접 꺼내지 못하고 이렇게 에둘러 말하는 것도 아마 이 낱말이 불러올 부정적 점화 효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동성애’ 얘기다. 동성애의 영어 낱말 ‘호모섹슈얼리티’(homosexuality)는 그리스어 ‘호모스’(homos)와 라틴어 ‘섹수알리타스’(sexualitas)의 합성어이다. 우리는 ‘호모’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호모 사피엔스’의 호모를 연상하고 사람이라는 뜻을 생각하지만, 여기서 호모는 그리스어로 ‘같은’ 또는 ‘동일한’의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동성애는 같은 성 사이의 성적 행동과 관계를 의미한다.

동성애로 표현되는 현상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 낱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 낱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이 단어를 구성하는 ‘호모’와 ‘섹슈얼리티’를 떠올린다. 여기서 섹스는 이 낱말이 지칭하는 사태와 문제를 왜곡하는 연상 작용을 점화시킨다. 이 단어를 듣는 순간 섹스와 관련된 온갖 역겹고 혐오스러운 장면과 경험들이 떠오른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이 ‘성’(sex)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성과 관련된 부정적 경험과 생각을 모두 이 단어에 투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사람들은 동성애라는 낱말을 꺼리고 두려워한다.

어느 사회나 사람들이 두려워할 것을 만들어냄으로써 사람들을 통제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쉽게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적 억압의 증거이다. 이런 점에서 동성애는 사회적 억압을 상징하는 이 시대의 낱말이다. 물론 동성애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관용하려는 운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면 질수록 본래의 문제는 감춰진다. 무엇이 감춰진다는 것인가? 동성애가 그 낱말이 말해주는 것처럼 ‘동성’ 간의 ‘성애’로 이해될수록 동성애가 갖는 진정한 도전적 의미는 사라진다. 동성애가 어떤 점에서 우리 시대의 도전이란 말인가?

동성애는 단순히 ‘성’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이다. 동성애는 이제까지 기존 규범에 의해 배제된 새로운 유형의 관계를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전통사회는 사람의 관계를 규범적으로 표준화하였다. 적절한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이런 전통 규범에 따르면 나이 많은 남자가 젊은 여자와 만나 관계를 맺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렇지만 시대와 사회가 변해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가 되었으며, 결혼 적령기도 20대에서 30대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결혼하기 전에 친밀한 관계를 나누는 것도 나이 많은 여자가 젊은 남자와 함께 사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맺게 되는 의미 있는 관계의 유형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전히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의 관계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사람들은 관계가 아니라 여전히 ‘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성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라는 생각과 규범이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한다. 그렇다면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불가능한 것인가? 브로맨스라는 낱말이 말해주는 것처럼 사람들은 남자들 간의 진한 우정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여기서도 ‘성이 개입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이상한 단서 조항이 암묵적으로 전제된다.

모든 친밀한 관계는 정서적 유대를 전제한다. 감정적 유대와 성적 애착의 경계선은 사실 분명하지 않다. 우리가 정서적으로 끌리는 사람은 우리가 기꺼이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 보면 감정적 유대는 깊어지고, 성적 애착이 생겨난다.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섹스는 이러한 애정 관계에서 한 부분일 뿐이다. 동성애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동성 사이의 애정 ‘관계’이지 성적 욕망이 아니다. 사회가 정상이라고 규정한 관계와는 다른 관계를 만들고 거기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바로 동성애이다.

동성애자였던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동성애가 새로운 실존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내가 남자를 원한 것은 남자와의 ‘관계’를 원한 것이었어요. 그것은 언제나 내게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반드시 커플의 형식으로서가 아니라 실존의 문제였어요. 남자들이 함께 있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함께 살고, 시간, 식사, 방, 여가, 슬픔, 지식 그리고 신뢰를 공유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동성애는 성적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라는 푸코의 인식은 문제의 핵심을 찌른다.

우리의 관계는 사회적 규범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사회 규범은 어떤 것이 허용되고 또 어떤 것은 금지되는지, 무엇인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를 규정한다. 동성애는 기존의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이루어질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면, 동성애는 분명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려 하는 창조적 도전이다. 기존 규범이 이성애만을 정상적 관계로 규정한다면, 동성애는 성을 넘어선 또는 – 이성애, 동성애, 무성애든 - 성과 상관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관계를 모색한다.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동성애는 결국 기존의 규범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이성애가 동질적 가치와 규범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동성애는 다른 가치와 규범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합성체인 ‘동성애’, 호모섹슈얼리티에서 성을 넘어선 사랑을 꿈꾼다면 우리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왜곡된 집착을 버려야 한다. 호모섹슈얼리티를 라틴어 합성어로 읽으면, 섹슈얼리티를 넘어서면 남는 것은 결국 ‘인간’(homo)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동성애는 우리 시대에 도전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떤 관계를 원하는가? 우리는 어떤 인간이기를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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